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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거인 정우진
&정우진의 태권도세상
정우진 약력
역사적인 북한 시범단 미국에 오다

 

인생을 멋있게 살려면

인생을 멎있게 살려면 모던게 좀 부족하고 풍부하지 말아야한다,
돈도 부족하고. 집도 적은편이고 . 여행도 가고 십은데 돈도 시간도 모자라고. 스터레스도 많구
삶에 부족 함이많아야 거겄을 하나 하나 열심히 채우는 그재미 그쾌감. 삶에 재미가있다.
모던겄을 긍정적 어로생각 하여라 .그러면 살맞이 날겄이며 거만. 오만 보다 검소하구 겸손 할려고 할때 깊은맞을 느끼며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그저 경험담이다,  “똥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누가 '사람냄새'가 나는가???


 태권도인들에게 선배로서의 도움은 흔히들하는 탁상공론보다는 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하여 꿈을 가진 많은 태권도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20년전 부터 알라스카를 차로 운전하여 도전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이민 무도개척자라면 아마 모두들 그런 꿈을 꾸었을 것이다.
 기후와 여러가지 많은 위험적인 문제로 겨울은 운전으로 갈 수 없고 여름이 가능하다. 무도인이기에 190시간의 운전도 가능했고 그것도 짧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4명의 모험가들이 미국의 중부지역 Iowa 에서 출발하여 알라스카로 갈 수 있는 최북단 Fair-bank 까지 가서 그곳에서 오일파이퍼와 에스키모, 인디안등 많은 유적을 보았고, 앵커러지라는 도시에 가서 알라스카의 무도 개척자인 유상선 관장을 만났다.
 유상선 관장과 60명 정도의 학생들의 강력한 부탁으로 그곳에서 세미나를 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드림과 목표가 있는데, 스포츠 태권도를 하면 메달과 트로피를 갖게되고, 진정한 무도 태권도인은 무슨 드림이든지 이룰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태권도를 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나는 고향부근에서 살고 있을 텐데, 태권도를 하였기에 71년 도복 한 벌만 들고 미국 대륙에도전했고, 알라스카를 차로 왕복했고 앞으로는 아프리카 횡단이 숙제다.
  다시 한 번 태권도는 나의 인생의 전부라고느낀다. 정말 6000만의 태권도인들은 멋쟁이들이다.
 유관장은 알라스카는 광어 낚시가 유명하다고 며칠 정도 쉬며 천천히 여행을 즐기며 가라고 하였다. 하지만 새 빌딩을 건축중이라 겨우 하루 같이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낚시에 잼벵인 내가 230 파운드 (약 104Kg) 정도의 광어를 낚았는데, 그 놈은 나보다 더 멍청한 놈인가 보다.
 사람은 지나가는 말로 ‘비행기를 타고 가면 편한데……’ 라고 했지만 나의 도전정신에 맞지 않다. 한 땐 사업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용비행기를 가진 적이 있다. 그 때와 지금은 전혀다른 문제이다. 요즘 사람들은 쉽고 편한 길로만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것이야 말로 정말 멋지고 재미있다. 돈도 권력도 좋지만 사람냄새가 나는 이들이 더욱 멋있고 존경스럽다.
똥개가 왜 많이 짖는가? 불안하니까 짖지. (좋은 차, 좋은 옷,큰 집, 오만, 거만......)
사람은 누구나 꿈이 있고 그 꿈에 도전하고 싶어하지만 마음 뿐이지 실천하는 이가 적다.
 무도 태권도는 차고, 때리고, 뛰는 육체적 예술보다 정신적으로 자신감가 꿈을 실천하는데 아주 특별하며, 꿈도, 도전도, 인내도,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정신을 강하게 하는 에너지 용광로이다. 나의 제자들에게도 그 점을 가장 많이 강조하며 지금까지 18만명의 제자를 가르쳤고, 4600명의 유단자를 배출 할 수 있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12일 동안 192시간을 왕복하고 11,000마일을 달렸다. 흔히들 하버드대, 예일대, 옥스포드대등 유명대학의 출신동료들은 세계어디서도 반긴다고 자랑들하는데, 진정 태권도만큼 마음으로 반기고 금방 어울리는 단체도 없을 것이다. 도복을 입으면 잘 난 놈도 못난 분도 모두 하나 이니 그 만큼 가까울 수 밖에 없다.
보잘  것 없는 내가 11개의 회사와  200여명이 넘는 직원들과 함께 일 할 수 있는것은  오로지 태권도란  세글자 덕분이다. 무엇이든 돕고싶다. 4월에 출간되는 자서전 재판 ‘고난은 인생의 보약이다’와 48년 수 많은 실패와 성공의 도장 경험담 ‘최고의 사범 + 최고의 도장 = Best Life’에 상세히 나열하였다.
나는 남쪽도 북쪽도 아닌 Korean이며 WTF도 ITF도 아닌 태권도인이다. 세계 180여개국 어느나라, 개인이든 혹 협회든, 태권도란 이름만 있으면 나는 OK다.
서로 헐뜻지 말고, 싸우지 말고, 우리는 무도형제다. 뭉치고 돕고 또 돕자……
모든 무도인들이여! 그리고 젊은이들이여! 도전하는 정신으로 꿈을 실현하기를 바란다. 꼭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개척자   정우진
 

 역사적인 북한 시범단 미국에 오다

 모두들 정부가 할 일을 개인이 하였다고 칭찬하고, 아부하는 분들도 많았다. 아부보다는 칭찬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1981년 남에서 북으로 본 판문점에서 나는 다짐했다. 언젠가는 태권도가, 우리가 저 38선을 부술 것이라고… 그리고 91년,  모두의 찬성속에서 들뜬 마음으로 미국, 북한, 남한 정부와 함께 태권도 타임즈 이름으로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을 추진했다. 미국 5개 도시에서 공연 장소와 날짜를 잡았지만,  남쪽의 갑작스런 취소로 무산되었다. 2005년에 다시 북한과 미국 정부와 함께 공연을 추진했지만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로 또 무산되었다.
 2007년 10월, 16년만에 드디어 공연을 하게 되었다. LA 약 4천명으로 시작하여, San Francisco 를 거쳐 나의 도시 Cedar Rapids, IA., 그리고 Louisville, KY., Atlanta, GA. 에서 약 13000 명의 관격을 만났으며, 몇번의 기립박수와 사인회를 열었다. 서로 밀고 땡기고 사지가 찢어 지는줄 알았다. 엘비스나 타이거 우즈보다 더욱 인기가 좋았다. 그 때문에 미국의 태권도인과 세계 6천만 태권도 인구와 우리 교민의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답례로 2008년 2월 뉴욕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 단이 평양 공연을 하게 되었고, 이것을 위해 황정오 관장과 내가 둘이서 왕복 경비를 부담하였고, 이것은 유병용 회장, 김태연 회장, 지승용 관장이 주최가 된 한인회와 평통교회 모두의 작품이다. 재미있게도 북한 시범단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이북 국가를 불렀고, 필 하모니 연주단도 처음으로 평양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하였다. (더 많은 정보는 woojinjung.com 참조)
 남한, 북한, 미국 세 나라가 모두 즐거웠다. 정부가 할 일을 교포가 하였고, 태권도 인들이 하였다고 야단이었다. 지난 16년동안 남한도 북한도 미국도 항상 의심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는데, 이젠 이 모든것이 청산된 것만 같았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특별한 이야기는 김순희라는 여자 시범단의 이야기이다. 그 녀는 Iowa 에서 시범 공연을 하던 중에 팔이 부러졌다. 나는 더이상 시범을 하지 못하게 말리려고 뛰어가니 손가락 한개를 높이 들어 보이며 사인을 주더니 몸을 날려서 시멘트로된 사이드 블럭 3개를 깨고야 말았다. 아차 싶었다. 끝나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팔이 부러져있었다. 백지장 같은 얼굴로 부서진 팔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항의식 어조로 왜 계속 시범을 했느냐고 따졌다. 답은 이랬다.
 “정선생님 조국 국기 옆에 미국 국기가 같이 있었습네다. 몸이 부서지면 어때요! 깨부셨읍네다.” 이것이 21살  약한 여자의 입에서 나온 짧은 대답이었다. 21 살의 약한여자가….
 세계는 지금 조국관 가족관이 약해지고 있다. 그녀는 다음 시범때에는 부서진 팔을 어깨에 울러매고, 두 발 과 한 손으로 울면서 울면서 또 울부짖으면서 또 그 다음 시범을 했다.
 “나의 조국, 나의 부모, 나의 형제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또 깨고, 깨부수고, 또 깰려고 한다. 단원들 일행은 말리고 또 말리지만 …” 피와 눈물과 땀으로 온 얼굴이 범벅이됐다. 외국의 어느 영화사에서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있다. 쉰들러리스트와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민족애와 가족애를 심어줄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어릴때 아니 태어날때 부터 원수의 나라라고 수없이 들었던 그 나라 미제국주의에서 그녀는 21세기 마지막 휴면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오스카상을 받았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 생각이 났다.
 2차 대전은 끝나고, 공장에서 일하다 살아남은 주이시 들에게 이젠 모두 돌아가라고 하니, 그 주이시들이 자신들의 금니를 뽑아 녹여서 반지를 만들어 주인공의 손가락에 끼워줬다. 주인공은 시계를 풀어보이며, 이 시계를 히틀러 군대에 주었더라면 한 생명을 더 구할 수 있었을텐데 하고 후회한다.
 꼭 그 영화와 같은 감동이 느껴진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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