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정신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작은 거인’
미국 아이오와의 작은 도시 시더래피즈에 태권도를 통해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키 작은 경상도 촌놈’ 정우진 회장(태권도타임즈)이 살고 있다.
자칭 ‘키 작은 경상도 촌놈’이라고 소개한 태권도타임즈 정우진 회장. 단돈 35달러를 들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간 지 올해로 37년. 문화와 풍습이 다른 나라에서 배고픔과 서러움, 무지막지한 고생 등을 이겨내며 그는 ‘아메리카 드림’을 이뤄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태권도를 통한 국제사회봉사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를 만났다!” 미국 시카고에서 자가용을 타고 드넓은 평야에 널려있는 고속도로를 4시간가량 지났을 무렵, 아이오와주 시더래피즈에 그가 운영하는 정스태권도장에 도착했다. 그곳은 그가 미국에 정착해 두 번째로 건립한 도장이다.
정우진 회장이 미국 이민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새로운 도전을 향해서이다. 미국을 떠나기 전 콩나물장수를 시작으로 공장 노동일을 하며 대학을 다니면서 가정교사, 그리고 태권도사범, 보험영업, 타이어가게 운영, 택시사업 등 안 해본 일 없이 일이란 일은 다 해봤다. 그러나 늘 좋지만 못했다. 순조롭던 사업들이 연이어 실패로 끝이 났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세상에 자신을 내던져 보자는 결심이 시작됐다. 그래서 전혀 다른 환경과 다른 인종들 속에서, 그가 살아왔던 전혀 다른 도전을 해보고자 결심. 당시 남다른 기회가 보장되는 선망의 나라로 여겨졌던 미국이 그가 떠나야 하는 나라로 ‘찜’했다. 게다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가서 남부럽지 않은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경우도 많이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국내와 달리 ‘돈’과 ‘빽’도 없이도 성실함과 도전정신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전해든 정 회장의 마음은 이미 미국에 도착했다.
마침내 그는 1971년 12월 29일 김포공항을 나오면서 나의 조국땅에 큰 키스를 하고, 어렵게 발급받은 미국비자와 3년 분할상환으로 구입한 미국 비행기티켓, 그리고 낡은 도복 하나 달랑 들고 새로운 세상과 인생 도전에 나섰다.
어렵게 미국행에 오른지라 그는 당시 부인과 배속에 있던 아이들 남겨두고 미국을 떠났다. 미국을 떠난 지 5개월 만에 자신을 닮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아내의 편지로 알게 됐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 속에 전화를 해보는 것은 사치라 생각했던 그는 아무리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아내에게 수고했다는 목소리 정도는 들려줘야겠다고 생각에 고민 끝에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아이의 목소리를 남편에게 들려주겠다며 잠자는 아이의 엉덩이를 때려가며 ‘애앵~’이라는 울음소리를 전해줬단다. 그는 아직도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간 지 1년 9개월만인 1973년 9월 1일, 미국의 한 작은 마을, 그곳도 흑인빈민가에 태권도장을 열고 뿌리를 내렸다.
당시만 해도 미국 내에서는 블루스 리(이소룡)의 쿵푸가 대 인기였다. 반면, 태권도는 미국인들에게 너무도 생소한 무술이었다. 당시 미국 내에 태권도장은 10곳 미만. 지금은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지만, 태권도 도장만 약 1만5천개 이상, 종합태권도장은 약 3만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태권도장을 시작한 곳은 미국의 한 작은 도시인 아이오와주 시더래피즈 흑인 빈민가. 사실 도장이라고 해도 겉보기로는 창고 수준을 겨우 벗어날 정도인 30여 평의 작은 공간.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 가장 든든한 재산으로 자리 잡아왔던 태권도였기에, 그것도 먼 나라, 먼 땅에서 바로 태권도를 통한 새로운 도전의 공간이었던 까닭에 아직도 그때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Mookas 한 혜진 기자
자세한 정보: Mookas, 오마이 뉴스, 네이버, 야후 ......
검색참조- 검색어 :정우진 태권도
|